강릉역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자 벌써 어스름한 색이 드리워지고 있다.
강릉역으로 빨리 가지 않으면 금방 어두워질 것임이 틀림없다.
‘아까 잠시 세워둔 자전거가 아직도 있으려나?’
예전에는 직원이 일일이 GPS로 개인 이동수단들을 찾아 화물 트럭에 수거하는 방식이었다면, 요즘은 이것마저 자동화되어 무인 자율주행 차와 거기에 설치린 로봇팔이 이들의 수거를 대신하고 있었다.
즉,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고 어딘가에 방치되어 있다면 해당 무인 수거 차량이 귀신같이 알고는 이를 찾아와 수거해 갔다.
그러니 한동안 자전거를 세워뒀던 민호로서는, 아직 거기에 그대로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거 차량이 오기 전에 얼른 가 보자.’
다행히 음식점 길목에 세워둔 그 자리에 자전거가 그대로 있었다.
‘자, 그럼 강릉역으로 얼른 가 볼까?’
먼저처럼 얼굴 인증을 통해 락을 풀고 결제까지 하고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배도 좀 부르겠다, 날도 점차 어둑해지고..
이번에는 평소 사용하지 않던 ‘자율주행 모드’를 켜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다.
민호는 그저 올라타고만 있으면 된다. 유일하게 할 일은 음성 인식으로 목적지만 알려주는 것뿐.
그러면 자전거 곳곳에 내장된 센서가 주변 길은 물론 장애물, 돌발 상황 등을 모두 감지하면서 나아간다.
그냥 오토바이 아니 차량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수준이다.
수동모드보다 훨씬 더 쉽게 갈 수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다.
사실 낮에 부딪힐 뻔한 것도 민호가 수동모드로 전환해서 탔기에 발생한 것이었다.
자율주행 모드였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날이 어두워져서인지 슬슬 거리에 사람들이 잘 안보이기 시작하네.’
타지에서 날이 어두워지니 무서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위 – 잉 ~’
희미하게 들려오는 어디선가의 기계음.
익숙한 소리에 고개를 들어 찾아보니 역시 아까 목격했던 드론이 여전히 하늘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저 드론은 도대체 뭐지? 누가 테스트라도 하고 있는 것인가?’
자주 목격되기도 하고, 특히 홀로 야심한 시간에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 보통 드론은 아닌 듯하다.
나중에 다시 확인해볼 생각으로 가지고 있던 휴대폰을 꺼내 망원렌즈 기능을 적용, 드론 기체를 확대해 한 컷 찍는다.
‘뭔지 몰라도 나중에 한 번 찾아봐야겠다.’
어두워져 많이 한적해진 길을 헤치며 나아가니 아까 내렸던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휴대폰으로 검색하니 다행히 오고 있는 버스가 있다.
무인 버스 체제라서 24시간 운영이기는 하지만, 대기인이 많이 없으면 배차 간격도 자동으로 길어지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상당히 오랜 시간 대기할 수도 있는데, 이미 오고 있는 버스가 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아직은 버스로 이동 중인 사람들이 꽤 있다는 이야기다.
5분 정도 지났을까. 도착한 버스에 몸을 싣고는 강릉역으로 출발하였다.
강릉역
아직 열차 출발 시간이 10분 남아 있어 대합실 내 대형 화면을 보며 시간을 때운다.
역사 내 공중파 방송이라면, 무엇보다 ‘뉴스’가 아니겠는가.
이 곳도 어김없이 AI가 실시간으로 전하는 소식에 사람들이 화면 앞에 삼삼오오 모여 시청하고 있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인간 음성을 흉내낸 AI 아나운서의 다소 긴장(?)된 목소리가 이어진다.
뉴스 제목은 ‘보안 뚫린 하늘’.
“최근 급속히 발전 중인 드론 기술로 인해,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피아식별 기능을 농락하는 일이 여러 차례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과 접경이 있는 경기도 파주, 연천, 그리고 동해안의 강원도 삼척, 강릉 등지에서 국내를 정찰할 목적의 드론이 자주 출몰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들의 스파이 정탐 드론들을 구분해내는 기술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 드론이 영공을 마음대로 날아다님에도 국방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북한, 드론?!’
“지금까지는 북한에서의 조종을 막기 위해 방해 전파를 발사하여 상당수 막아왔으나, 최근 급속히 발전한 AI 자율주행 드론들 때문에 이마저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수상한 드론을 목격한 국민 여러분께서는 즉시 군 부대 또는 국정원에 신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설마..?’
‘강릉 하늘에서 수시로 날아다닌 그 드론?!’
그러기엔 너무 적나라하게 날아다녔다. 민호도 갑자기 혼란스럽다.
하지만 각종 스텔스 기능들이 난무하는 요즘의 경우, 레이더보다 오히려 사람 눈으로 관찰하는 것이 더 정확한 맹점이 존재하는 것으로 볼 때, 레이더로 발견하지 못한 드론을 민호가 우연히 계속 목격했던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까 찍어놨던 사진을 다시 폰 화면에 띄워본다.
이런 사실을 알고나니 더 수상해지는 사진이다.
그렇다고 아직 100% 정확하지도 않은데, 의심이 간다는 이유로 어디 신고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곧 열차 출발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일단 대합실을 나섰다.
다시 집
열차 안에서부터 줄곧 생각하던 궁금증은 집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아니 더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는 느낌이다.
‘무언가 있을지도 몰라.’
방 안에 들어와 컴퓨터를 켜고 북한 드론 이미지들을 검색해본다. 드론 종류가 수없이 많다보니 민호가 찍은 사진과 정확히 일치하는 드론을 찾아내기 쉽지 않다.
또 다시 미궁 속에 빠진다.
‘일단 신고해야 할까?’
‘아니야, 일단, 다음주에 한기천 교수님을 찾아뵙기로 했으니 그 때 여쭤보는 게 나을 것 같다. 혹시 뭔가 알고 계실지도 몰라.’
한기천 교수. 민호가 드론 관련 군 입대를 문의하자 나중에 연구실로 찾아오라고 했던 교수다.
민호가 드론에 관심갖기 전까지는 잘 몰랐지만, 미국에서 드론 관련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지금까지 연구를 이어올 만큼 드론 관련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의심스런 눈빛으로 사진을 찾다가 피로함을 느낀 탓인지, 민호는 그만 잠자리에 들기로 한다.
‘드론, 북한, 정찰, …’
누워서도 생각을 하고 있니, 꿈에서까지 생각이 이어질 것만 같다.
일요일
6시 정각에 맞춰진 휴대폰 알람이 오늘도 어김없이 멜로디를 울린다.
‘아.. 벌써 일요일이었나.’
어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서인지 몰라도 주말이 더 빨리 지나가는 듯하다.
아직 졸린 눈을 비비고는 어제 드론 관련 생각이 아직 남아서인지 휴대폰으로 최신 뉴스를 검색해본다.
‘……’
조용하다.
혹시 민호가 어제 봤던 드론 관련 뉴스에 업데이트가 있나 이리저리 살피지만, 후속 뉴스는 아직 보도되지 않고 있다.
‘괜한 의심이었나.’
복잡한 마음을 안고 오늘 일정을 확인하려 휴대폰을 본다.
‘7시 조기축구’
그러고 보니 저번주 일요일에 참여하지 않았던 일이 생각난다. 바쁘다는 핑계가 있기는 했지만, 오늘도 빠지는 건 회원들에게 미안하니 오늘은 참여할 생각으로 몸을 일으켜 세운다.
‘샤아아..’
틀어놓은 물줄기에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는 간소한 운동복을 꺼내 차려 입는다. 여기에 축구화까지 챙기니 누가 봐도 영락없는 조기축구회 회원이다.
그렇게 근처 공원으로 가니 7시 시작임에도 6시50분에 이미 여러 회원들이 공을 차고 있었다.
“여어~~ 민호, 왔어~~?”
조기축구회에서 가장 활발하고 열심인 아저씨가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크게 흔들어댄다.
“네! 안녕하세요~!”
지난주 나오지 않은 데 대한 미안함이 섞여서였을까.
민호가 평소보다 더 크게 인사한다.
“지난주 안 나왔던데, 무슨 일 있었어?”
“아.. 아뇨, 그냥 그 날 바빠서 못 나왔어요.”
민호가 머쓱한 표정으로 아저씨에게 대답한다.
“민호가 없으니 우리가 선수가 없잖아, 선수가 하하..”
아저씨가 민호를 반기며 활짝 웃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빠 손을 잡고 같이 어린 아이들도 보이고, 다들 조금 있을 경기를 대비하여 몸을 풀기에 여념이 없다.
자주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쩌다 나와 상대적으로 낯선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축구 경기를 시작하여 공 하나를 놓고 시합을 하는 순간 그런 낯설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린다.
“패스, 패스~!”
같은 팀의 다급한 요청에 얼른 패스를 하고 또 빈 공간을 향해 달린다.
사실, PC방같은 게임에서는 공격을 선호하지만 실제 축구 경기에서 민호의 주 포지션은 수비다.
처음부터 수비를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상대방의 빈틈을 먼저 공략하기보다는 상대방이 어느 쪽으로 어떤 방식으로 공격할지 예측하고 대비하는 데 더 소질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직접 슛을 쏘기도 하지만, 주로 팀 내 공격 또는 전방에 있는 동료에게 주로 어시스트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풋살 수준의 경기가 아닌 정식 규모 경기장에서는 어시스트조차 할 일이 없지만 말이다.
한참을 뛰고 있는 와중에 언뜻 드론 한 대가 공중에 떠 있는 것이 보인다.
회원 중 한 명이 조기축구 경기를 녹화하고 분석한다며, 얼마 전부터 하늘에 띄워놓고 촬영하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지만, 나중에 이 영상을 조기축구회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다시 보면서 분석하는 재미가 나름 쏠쏠했다.
치열한 축구 경기가 끝나고 휴식을 취하는 사이, 민호가 드론을 가져온 회원에게 묻는다.
“와, 어찌 이런 생각을 하셨어요? 국가대표 경기나 방송으로 쓰는 건 봤는데, 조기축구할 때도..”
“하하, 사실 회사에서도 이걸로 여러 일을 많이 하는데 생각해보니 조기축구할 때도 쓰면 유용하겠더라고.”
“회사에서는 어떤 일에 쓰세요?”
“산지나 높은 언덕, 험지는 사람이 접근하기 힘들지만, 드론을 활용하면 금방 지형이 어떤 구조인지 쉽게 파악이 되고, 또 회사 창고 안에 있는 재고 조사할 때도 요즘은 워낙 대규모이다보니 지상 로봇보다는 드론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면서 체크하는 게 일상화되어 있지. 중요한 건 모두 전자동이라는 것이지. 중앙 AI가 다 통제한다는 말이야.”
‘드론이 정말 실생활에 많이도 쓰이는구나.’
드론의 활용성에 새삼 감탄하는 민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또 걱정도 든다. 요 몇년간 대학생 졸업 후 취업률이 계속 낮아지고 있는데, 상당수의 일자리를 로봇이, 이제는 드론이 점차 잠식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단순 업무이거나 서비스 쪽이 많은 아르바이트는 이미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으로 어려워졌다. 많은 가게들이 인건비 절약을 위해 사람보다는 기계를 선호, 구인 광고가 가뭄에 콩나듯 나오기 때문이다.
민호도 사실 주말에 가끔 카페,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는 했는데 이제 이마저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수입이 없다시피 한 상태다.
“그럼, 드론 관련 일을 하면 앞으로 취업할 곳도 많고 유망하겠네요?”
“그렇지~ 아마 드론만 잘 알면 앞으로 먹고 사는 데는 지장없을거다.”
이 말에 민호도 보다 확신이 생긴다.
‘드론 자격증, 드론 관련 군 입대, 드론 직종 취업, …’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해 저도 모르게 빠른 설계가 이루어진다.
“덕분에 많이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클래식
민호에게는 하나 고상한 취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클래식이다.
‘아침부터 조기축구를 해서 좀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뒤에 있을 클래식에는 늦지 않게 가야지.’
학생 입장에서 클래식을 들으러 간다는 것에 적잖은 금전적 부담이 있기는 했지만, 정부 그리고 주최기관에서 해 주는 각종 학생 할인혜택을 받으면 30%, 많게는 50%까지도 낮은 요금으로 들을 수 있어 민호는 그것을 적극 활용 중이다.
‘집에서 씻고 조금 쉬다가 출발하면, 얼추 공연 시작 전에 도착할 수 있겠다.’
속으로 생각하며 축구화가 든 주머니를 어깨에 걸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특별히 선호하는 공연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가는 곳은 서초구에 위치한 예술의 전당이다. 공공기관으로 되어 있어서인지 타 공연장보다 유독 싸게 들을 수 있어서 민호에게는 안성맞춤과 같은 곳이다.
가장 싼 좌석으로 해서 2~3만원 수준에 샀다.
이마저 민호에게 여전히 부담인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나만의 작은 사치’ 같은 느낌으로 이 쯤은 취미에 투자할 만하다고 스스로 합리화한다.
‘오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는.. KBS교향악단.’
먼저 보았던 공연 안내문을 다시 확인하고서는 공연장 실내로 들어간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는 것이 보인다.
물론 그 많은 사람들이 내던 웅성거리던 소리도 언제 그랬냐는 듯 연주 시작과 함께 조용해졌다.
사실, 민호도 궁금하긴 했었다.
공대, 과학, 기계 쪽에 관심많은 자신이 왜 이런 클래식을 들으러 직접 찾아다니는 것인지.
나중에 내린 결론이지만, 그것은 아무리 디지털화되어도 결국 사람은 아날로그적인 존재이기에 아날로그의 향수를 찾아 끝없이 헤매는 것이라 그렇게 단정지었다.
어느덧 음악이 중반에 이르자 지휘자 손놀림도 점차 힘차고 격하게 변해간다.
마치 무엇인가에 취해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이다.
민호 역시 이를 보며 음악이 안내하는 ‘규칙 속의 불규칙’으로 점차 빠져들어갔다.
※ 제6화부터는 문피아 사이트에서 연재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