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로
한민호. 21살. 지겹다고 생각했던 10대 학창시절을 끝내고 대학생이 된지도 벌써 2년째지만, 그 지겨움은 오히려 지금 배가되고 있는 듯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누군가가 시킨 것을 별 생각없이 해야 했다면, 지금은 무엇을 해야할지조차 생각해내야 하는 귀차니즘이 한 단계 더 추가된 때문이리라.
‘투덜 투덜 …’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지만 잘 들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표정을 보니 무엇인가 심각하게 골똘히 생각하며 거리를 걷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쉬-잉, 쉬-이잉”
옆 차도로 다니는 자동차들이 바람을 가르며 쏜살같이 내달린다. 그 때마다 그의 머리칼도 조금씩 이리저리 휘날린다. 그의 스마트폰 화면은 이것저것 검색한 흔적들로 가득하다. 공통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군대’.
서기 2040년 현대 한국 사회는 여전히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다. 군인의 절대 수요가 옛날보다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 감소로 모병제를 하기에는 여전히 필요 인원 수를 채우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군인이 예전보다 적게 필요해진 것은 드론 때문이다.
2022년 발발하여 3년간 지속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급속하게 확산된 드론전은 이제 육해공을 아우르는 로봇 대리전의 핵심이 되었다. 보병으로서 총을 들고 직접 싸우기보다 드론을 조종하고 지휘하는 역할을 맡는 군인들의 수가 이제 대다수가 되었다.
“띠리리리~”
집중해서 보던 스마트폰 화면이 갑자기 벨이 울리며 통화모드로 바뀐다. 우식이다.
“여~어~ 뭐해, 별 일 없으면 이 쪽으로 와서 놀자구~!”
안 그래도 심란하던 차에 놀자는 친구의 목소리가 때마침 들려오니 더 세차게 흔들린다. 군대를 갈지 학업을 더 이어나갈지 선택해야 하는 중요한 기로에서 선 이 순간조차 바로 앞에서 달콤하게 속삭이는 즐거움의 유혹이 이내 선택권을 송두리째 가져간다.
“거기 어딘데? 갈게”
술집
서울시 용산구 골목에 있는 한 술집.
우식이와 철성이가 술잔을 마주치며 대화하기에 여념이 없다.
“여기 있었네?”
어차피 자주 보는 친구들이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또 반가운 게 친구인 듯하다.
“어, 왔네?”
우식이가 술을 마시다 말고 민호를 반갑게 맞이한다. 철성이 역시 하던 말을 멈추고 민호를 바라본다.
”둘이 먹고 있었던 거야? 별 일 없지?“
별 일 없는지 묻지만 별 일이 있으면 뭔가 재미가 있을 것 같다는 중의적인 말투다.
”이번에 승구 선배가 입대하나봐. 그렇게 안 간다 안 간다 하더니 이제 더 이상 버틸 명분도 없고 다들 가니 조바심도 나는지 결국은 가나 보더라구.“
우식이의 말에 철성이가 한마디 더 보탠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갈 것 같았으면 술이라도 한 잔 하자할 걸 그랬네..“
그렇지 않아도 군대로 고심이 크던 차에, 선배이긴 하지만 주변의 한 명이 또 입대를 하니 민호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해진다.
철성이가 그런 민호의 표정을 눈치채고 묻는다.
”왜, 무슨 걱정거리 있어?“
”그렇잖아도 요즘 군대 많이들 가고 하니 나도 이번 학기만 다니고 입대할까 생각 중이야.“
민호의 폭탄 선언에 우식이도 갑자기 한 방 맞은 듯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다.
”벌써.. 가게?“
”벌써라니 지금 가봐야 빠른 것도 아니라구.“
“하긴, 지금 입대하더라도 대학교 안 오고 바로 입대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지금 간다고 빠른 것도 아니긴 하지.”
우식이가 바로 수긍하는 말을 한다.
잠자코 지켜보던 철성이 역시 한마디 거든다.
“사실 나도 고민 중이긴 해. 나도 현역 판정 나와서 입대하긴 해야 하는데 큰일이네.”
그러고 보니 우식이는 이 화제에서 한 발짝 비켜있는 듯 제3자적인 태도다.
철성이가 그런 우식이가 부러운 듯 넌지시 물어본다.
“나도 군대 말고 그냥 병역특례 쪽이나 알아볼까?”
“내가 말야, 병역특례이긴 하지만 지원요건 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여기도 쉬운 건 아닌 것 같아.”
우식이의 말에 철성이가 다소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철성이가 이내 민호에게 묻는다.
“군대 병종은 생각해봤어?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던데.”
“아직… 군대를 적성 따지는 것도 어쩌면 웃긴 것 같긴 한데, 기왕이면 내가 잘할 수 있는 곳으로 지원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 갑자기 여기저기 알아보려니까 정보는 많은데 정작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하는 건 쉽지 않네.”
결론없는 대화가 오가다 술집을 나서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 어둑어둑한 저녁이 되었다.
우식이가 뭔가 아쉬운 듯 말한다.
“2차? 여기에서 끝내기엔 뭔가 아쉽잖아?”
철성이도 머뭇거린다. 그런 철성이를 본 민호도 잠깐 갈등하다 말한다.
“나도 아쉽긴 한데.. 심란하기도 하고 집에 가서 군대 관련 정보도 알아봐야 할 것 같고 하니 난 이만 여기에서 빠질게.”
민호의 말에 우식이가 다소 풀죽은 표정을 하고는 철성이를 곁눈질한다.
철성이도 머뭇거리는 표정이 여전하지만 내일 또 등교할 생각에 곧 마음을 정한다.
“나도 그럼 그냥 집에 갈게.”
“왜? 우식이랑 한 잔 더 하지. 난 그냥 집에 가서 할 일이 있어서말야.”
“나도 과제할 것도 있고 일이 있어서 그냥 집에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일말의 기대를 안고 철성이를 보던 우식이가 체념한 듯 말한다.
“… 어쩔 수 없지 뭐, 그럼 오늘 시마이하고 내일 학교에서 보자.”
길지는 않았지만 잠깐의 만남은 그렇게 정리되었다.
집
집으로 오는 길이 항상 걷던 길임에도 무언가 낯설다. 평소 하지 않던 고민을 하고 있어서일까. 생각이 많으니 어느새 집에 다다른 것도 모를 만큼 시간이 빨리도 흐른다.
“다녀왔습니다.”
집에서 TV를 보시던 어머니가 대답한다.
“밥은 먹었니?”
“네, 먹었어요~”
이내 짧은 인사를 마치고 민호는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책상에 놓인 노트북을 켜고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무의식적으로 인터넷 브라우저에 즐겨찾기되어 있는 유튜브에 마우스 커서가 다가간다.
대학교에서 전공 중인 항공우주학 관련 컨텐츠를 많이 봐서인지 여러 컨텐츠들이 주제가 다른 듯하면서도 무언가 공통적인 특징들이 보인다. 항공사, 우주, 전쟁, 방산, 상식, 물리, …
여러 추천 컨텐츠들 중 오늘따라 유독 눈에 띄는 것은 군대 관련 정보였다. 평소였으면 관심없이 다른 컨텐츠들을 눌러서 봤겠지만 우연찮게 뜬 컨텐츠에 오히려 관심이 가는 오늘이다.
‘마침 이거 재미있어 보이는데?’
늘 그랬듯 큰 기대없이 한 번 눌러본다. 10초 내 재미없다 싶으면 뒤로가기 하려고 마우스는 이미 대비 태세다.
‘드론에 죽고사는 방산’
제목은 대부분 컨텐츠들이 그렇듯 죽느니 사느니 자극적인 말들로 점철되어 있어 사실 이런 말에는 어느 정도 면역 아닌 면역이 생겼다.
그냥 호기심이나 채워볼 심산으로 영상을 지켜본다. 점차 사람들이 대면하여 싸우는 방식이 아닌, 드론을 활용한 대리전에 가까워진 전쟁 양상에 맞춰 방산업계,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각 나라 및 국제기구가 드론 개발에 더 많은 비용을 투자하겠다는 그런 류의 뉴스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심정으로 다소 가볍게 지나갈 컨텐츠지만, 관련 전공을 배우고 있는 민호로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이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고민을 하며 지켜본다.
‘드론, 가성비, 장소 초월, AI 적용, 미래, 조종, …’
많은 단어들이 영상에 나오지만 이 분야에 평소 관심있던 민호는 본인도 모르게 몰입하여 영상을 지켜본다. 10분이 넘는 영상이었음에도 민호는 짧은 분량에 애석해 할 정도로 해당 영상은 민호에게 잔잔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 뭔지는 몰라도 내가 이걸로 병역을 이행하면 내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고 일석이조가 될 것 같은데?’
구체적 방안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민호는 무언가 마음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열정과 함께 앞으로 무엇을 행동해야 할 지 대충 감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하자. 드론.’
오랜만에 민호 마음 속에서 무언가 쿵쾅거리는 느낌이 들 정도로 머릿속은 온통 드론으로 채워졌다.
학교
금요일. 연초 계획했던 강의의 수강신청 실패로 주4파는 일찌감치 포기했고, 월화수목금 등교 중인 민호다.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서인지 회사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로 지하철 역사가 붐빈다.
‘9시 지나서 타도 뭔 사람들이 이리 많은지…’
예전에는 9시 출근 18시 퇴근이 공식 룰인 것처럼 대부분의 회사들이 이 황금률을 지켰지만, 점차 직무 중심의 공유 좌석, 출퇴근 시간 유연제도, 재택근무 활성화 등으로 이 황금률은 깨진지 오래였다.
그러다보니 9시 지나서 타도 출근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수 밖에 없다.
‘나도 나중에 취직하면 이렇게 또 다니고 있어야 하나…’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먼(?) 미래를 걱정하며 민호는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강의실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학우들이 자리에 앉아있다.
교양 수업 등 다른 강의들은 사이버교육으로도 많이 이루어지지만, 학과의 나이 지긋한 교수님들은 아직 온라인 방식의 수업을 못 미더워한다. 학생들이 집중해서 수강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사유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뭔가 권위를 내보이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이야 어쨌든, 방학할 때까지 이런 식으로 한 학기를 보내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안녕?”
제일 먼저 민호를 본 우식이가 반갑게 인사한다.
“어, 안녕. 어제 잘 들어갔어?”
“응, 뭐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설마 내가 2차라도 또 갔을까봐?”
말을 하고는 우식이가 피식 웃는다.
이내 학과 교수님이 강의실에 들어온다.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교수로 임용된지 오래된 교수로, 그래도 이른 나이에 임용이 되어서인지 이력치고는 젊은 축에 속하는 교수다.
“오늘 볼 곳이…”
책장을 넘기며 교수가 다들 들리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어느 학생이 대답한다.
“145페이지입니다.”
“응, 그래. 여기구만.”
약간의 시간을 지체하더니 교수가 다시금 학생들에게 묻는다.
“저번 시간에 얘기했던 내용은 다들 이해하고 있는거지?”
갑자기 강의실에 정적이 흐른다. 정말 이해못해서 대답 안하는 것일 수 있고, 일부 몇몇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은 혼자가 전부가 아니기에 답을 안하는 것일 수도 있다. 민호는 사실 전자에 가깝다.
‘요새 군대때문에 다른 것들을 알아보다 요즘 배운 것을 다시 볼 생각을 못했네.’
새삼스레 자책한다. 사실 지난 시간에 배운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늘 듣는 내용은 이해할리 만무했기에 오늘도 소귀에 경읽기처럼 뜬구름잡는 말로 들릴 게 뻔하다.
뭐, 그렇다고 교수가 일부 학생들을 위해 지난 시간에 배운 내용을 다시 강의할리 없다.
“이번 시간은 …”
교수의 강의가 시작되었지만, 역시나 이해는 커녕 앞으로 이해해야 할 짐만 더 얹고 있는 느낌이다.
강의 종료
눈은 뜨고 있으되 의식이 없고, 종이의 글자는 이미 뇌를 경유하지 않고 눈에서만 반사되다 2시간을 보낸 뒤에야 강의가 종료되었다. 책 내용을 떠나 민호 머릿속에는 온통 ‘드론’이라는 단어만 가득했기에 사실 책 내용이 쉽고 어렵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교수님이 강의를 마치고 이제 슬슬 책을 챙겨 문쪽으로 나가는 광경이 보이자, 언뜻 지금 무언가 여쭤보면 자신이 하는 고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조언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교수님…!”
이미 복도로 발길을 향한 교수님을 민호가 급하게 옆까지 쫓아 다급하게 부른다.
약간 놀랐다는 듯이 교수님이 민호에게 고개를 돌린다.
“음.. 무슨 일인가?”
“네, 제가 요즘 군대 때문에 고민이 많아서 그런데, 드론 관련해서 군 생활하는 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서 왔습니다.”
미처 질문을 머릿속으로 가다듬지 못했기에 다소 장황한 어투로 민호가 교수의 생각을 묻는다.
“드론..? 하하”
교수가 뜻밖이라는 표정과 어딘가 즐거움이 가득한 낯빛으로 가볍게 웃고는 이어서 말한다.
“여기서는 길게 말하기 어려우니, 시간이 나면 내 방으로 오게.”
“네, 알겠습니다.”
사실 본인이 뭘 알고싶은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교수님이 그래도 관심을 가지고 상대해주시는 것 같아 여쭤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우식이와 철성이가, 교수가 자리를 뜨자마자 황급히 민호에게 다가간다.
우식이가 묻는다.
“오오.. 갑자기 평소 하지도 않던 질문을? 뭘 여쭤본거야?”
“별 건 아니고, 그냥 군대를 드론 관련해서 입대할 수 없나,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같은 걸 알고 싶어서말야.”
철성이가 이 말에 급 관심을 보이며 말한다.
“우와, 진짜 마음 결정한거야? 나도 민호가 그러니까 갑자기 관심이 가네. 혹시 정보 알게 되면 나도 좀 알려주라.”
“응, 그럴게.”
막상 엉겁결에 교수님께 문의는 했지만, 사실 민호도 아직 본인 마음을 100%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혼자 끙끙 앓고 있어봐야 해결될 일도 아니고, 일단 이 분야 전문가이신 교수님의 견해를 구하고 다시 생각해보자는 심산이었다.
연재가 시작되었군요
드론이 어떤역할을 할지 기대가 큽니다
2편이 기다릴께요
멋집니다 2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