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판타지 소설] 최종드론병기 – 2 –

점심시간

‘벌써 점심시간인가?’

하긴 전공수업 2시간이면 어물쩡 점심시간이 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어제 먹은 술이 아직도 덜 깼지만, 그렇다고 학생 신분에 근처 해장국 가게를 선뜻 가기에는 주머니 사정이 너무도 뻔하고, 학생식당에 해장할만한 메뉴가 있지는 않은지 급 궁금해진다.

“오늘 식당 점심 메뉴 뭔지 알아?”

우식이나 철성이 둘 중 한 명이 혹시 메뉴를 꿰고 있는지 물어본다. 물론 기대는 안했지만, 역시 그들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인 눈치다.

“어제 술을 좀 많이 마셨나.. 1차밖에 안했는데도 그러네..”

평소 술을 좋아하는 우식이가 오늘따라 컨디션 난조인지 불평어린 말을 한다.

“그럼 일단 학생식당으로 가 보자.”

철성이의 제안이 입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셋은 동시에 식당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줄서야 할 수도 있으므로 가급적 빨리 가서 먹고 오는 것이 이들에게는 암묵적인 룰처럼 되어 있었다.

“이야~ 그래도 아직 사람들이 많이 안 왔나보네. 오늘 점심 메뉴가 뭐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배를 부여잡고 있던 우식이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돌기 시작한다.

A메뉴 카레, B메뉴 돈까스

“아, 뭐야~ 뜨거운 국물 같은 것 없나, 오늘따라 메뉴가 왜 이렇지?”

우식이의 또 다시 터져나온 불평에 나머지 둘은 내심 실망하다가도 갑자기 웃음이 터진다.

“그냥 여기까지 왔으니 먹자. 어쩔 수 없지, 뭐.”

민호의 말에 모두 동의한 듯 식판을 하나씩 들고 배식하는 곳으로 향한다.

우식이는 경북 안동에서 왔고, 철성이는 집이 서울이기는 하지만 또 그렇게 부유한 것은 아니어서 각자 돈을 아껴쓰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다. 민호 역시 별반 다르지 않기에 학생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그래도 생활에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셋 다 돈까스를 먹는데, 그래도 생각보다는 맛이 준수한 편이다.

“돈까스로 술 해장이라니, 크으으~~”

우식이가 장난스런 표정으로 익살을 떤다.

“알고 보니 뭐든 배만 채우면 숙취가 해소되는 거였네?”

민호가 우식이 말에 맞장구친다. 철성이 역시 뭔가 돈이 없어 셋이서 돈까스로 해장하고 있는 이 상황이 새삼 웃긴지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간다.


동아리

점심 식사 후 공강시간이 되자, 민호가 둘에게 인사를 건넨다.

“나 사실 오늘 공강시간에 동아리에 잠깐 들르기로 했는데, 난 동방 쪽으로 갈테니 이따 강의실에서 보자.”

민호의 말에 둘은 알겠다고 하고는, 캠퍼스 내 갈래길에서 이만 헤어진다.

민호는 사실 동아리 활동에 그리 관심 없었는데, 학기 초 교내 동아리들이 동시 개최하는 동아리 박람회를 갔다가 우연히 붙들려서(?) 가입하게 된 곳이 바로 ‘천체관측동아리’였다. 사실 붙들렸다는 표현은 민호가 그냥 하는 공식 사유이고, 실은 당시 모집하던 여학우들이 예뻤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혼자만 아는 비밀이다.

천체관측동아리는 ‘동방’이라 불리는 동아리 방이 다른 동아리들과 함께 지정된 건물에 따로 있었지만, 천체관측동아리 만큼은 특이하게도 교내 커다란 천체망원경이 설치된 건물까지 출입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특혜가 있었다. 제2의 동방인 셈이었다.

하기사 우주 천체를 봐야 할 동아리가 천장으로 막혀 하늘을 볼 수 없는 실내 공간에서 모임을 갖는 것이 어찌보면 어불성설이기는 했다.

한편 교내 천체망원경을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한 학교 쪽의 의도도 있었다. 물론 동아리 지도교수의 승인이 필요한 사항이지만 말이다.

“어, 벌써 와 있네?”

천체망원경 주위에서 느껴진 인기척에 민호가 둘러보다가, 예리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예리는 올해 학교에 입학한 새내기로, 민호보다 한 살 아래 후배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예리가 해맑게 웃으며 반긴다.

“예리 혼자뿐이야? 다른 사람들은?”

“일이 많은지 아직 안 왔어요. 혜령이랑 학철이는 수업끝나면 온다 했고, 선배님들은 아직 소식 없네요.”

“예리는 오전에 수업이 없었나봐?”

“아, 아뇨~ 저는 수업이 9시부터 시작해서 일찍 끝나 여기에서 시간보내고 있었어요.”

사실, 점심 때 여기 동방에 모이는 것은 동아리 규칙은 아니고 자율적인 모임이다. 한 달마다 정기적으로 갖는 모임을 빼고는 동아리 내 규칙이 그리 엄격한 편이 아니다.

민호가 여기에 들른 이유도 사실 꼭 약속이라기보다는 최근의 고민을 동아리 부원들에게 털어놓고 이야기도 나눌 겸해서 온 것이었다. 그런데 선배들은 커녕, 여자 후배만 한 명이라니.

“혹시 나 군대가면 동아리에 크게 해가 되거나 할 일은 없겠지?”

뭐, 당연한 말이다. 민호가 딱히 동아리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도 아닌데 민호가 잠깐 빠진다 한들 그게 동아리에 딱히 해가 될 리가. 그냥 군대간다 하면 그러니 자동으로 나온 아무말대잔치일 뿐이었다.

“선배, 군대 가요?”

예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사실 얼마 전 동아리 선배 한 명이 그렇게 입대하였었기에, 또 다시 나온 선배의 군 입대 이야기에 예리로서는 놀라움 반 아쉬움 반이 될 수 밖에 없다.

“아, 아니, 지금 당장 간다는 것은 아닌데.. 고민하는 중이야.”

뜻밖의 후배 반응에 민호가 짐짓 당황하며 말을 얼버무린다.

“안 그래도 동아리가 휑해지는 것 같은데 선배님들이 자꾸 군대가시니 슬퍼요.”

이건, 뭐.. 지금 당장 간다 한 것도 아니고 고민 중이라 했는데, 이러다 등떠밀려 입대할 판이다.

“아, 아냐.. 안 가, 안 가~”

민호가 놀란 듯이 그게 아니라며 손사래친다.

“정말요? 휴~우 다행이다.”

예리가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예리와 마찬가지로 1학년인 학철이가 들어오며 우렁차게 인사한다.

“ㅎㅎ 그렇게 크게 인사할 필요는 없어.”

동아리 신입들의 군기있는 인사에 내심 기분이 좋지만, 그래도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수업끝나자마자 오려 했는데, 교수님이 의외로 시간이 지나서까지 강의하셔서 늦었습니다.”

학철이가 공손하게 이야기한다.

“뭐, 오늘 꼭 모여야 하는 날도 아닌데 늦으면 또 어때, 오는 것만 해도 감사한거지 ㅎㅎ”

민호는 후배들의 동아리 사랑이 이렇게 컸던가 내심 놀라며 후배들이 사뭇 대견스러워진다.

“회장님은 요즘 잘 안보이시네.”

“네, 저도 가입한 이후 몇 번 못 뵈었어요. 자주 나오지는 않으세요.”

예리가 답한다.

‘요즘 취업 준비하시나…’

그도 그럴 것이, 천체관측동아리 짧게 말해 ‘천관동’ 회장은 4학년 이승훈 선배가 맡고 있었다. 본래 3학년에게 물려주려 했는데, 많이들 군대에 가 중간이 비다 보니 이승훈 선배가 뜻하지 않게 2년째 연임 중이다.

하지만 ‘내 코가 석자’라고 동아리 회장 활동에 열중하기에는 취업시장 문이 그리 녹록지 않아 사실상 동아리 회장이 반쯤 공석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석진 선배는 군 생활 잘하고 계셔?”

예리에게 묻는다. 민호보다 1년 선배인 3학년 김석진. 작년에 입대했는데, 동아리 내에서 예리와는 캠퍼스 커플 즉, CC 관계다.

“네, 며칠 전 면회도 갔다왔는 걸요. 잘 계세요. 작년에는 힘들다고 하더니 올해는 좀 나아졌나 보더라구요. 살도 좀.. 찐 듯?!”

본인이 한 말임에도 마지막 말이 본인도 웃긴지 예리가 살짝 웃는다.

“부럽다, 부러워…”

군생활이 이제 1년 남짓 남은 게 부럽다는 말투로 말했지만, 사실은 CC가 더 부러운 게 민호다. 그렇다고 그걸 대놓고 얘기하기에는 그렇고.

“나도 그냥 1년 전에 군대나 빨리 다녀올 걸 그랬나 ㅋ”

민호가 마음에도 없는 푸념을 한다.

사실 어차피 다녀올 것이라면 미리 갔다오는 것도 좋을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중고등학교에서 답답했던 생활을 끝내자마자 입대할 것을 생각하면,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 한들 군대를 빨리 갈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다시 어지러워진다. 지금까지 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사실 정작 급한 것은 민호 본인이다.

‘군대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간다면 어디로…?”

다시 처음에 하던 내적 질문으로 회귀한다.

학철이가 잠깐의 정적을 깨고 묻는다.

“선배님, 식사하셨어요?”

“응, 했어. 학철이는 밥 먹었어?”

“…네. 저는 이따 친구들이랑 먹으려구요.”

“아, 그래? 다음에 내가 한 번 사줄테니 같이 먹자.”

민호의 말에 학철이가 웃으며 대답한다.

“네,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ㅎㅎ”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보니 어느 덧 다음 수업시간이 다가온다.

“그럼, 난 먼저 가 볼테니 또 보자~!”

민호의 인사에 후배들이 다같이 대답한다.

“네!”


또 다시 강의실

강의실에 도착하니, 뭔가 휑하다. 그도 그럴 것이 강의 시작하기 15분 전 도착했으니 말이다. 쉬는 시간이 10분인 것을 고려해도 너무 빨리 왔지만, 요즘 머리가 복잡해 잠깐 휴식도 할 겸 일부러 이른 시간에 온 것이다.

‘드론, 나, 군대, …’

무슨 삼위일체라도 읊는 것처럼 세 개의 단어가 계속 머릿속을 헤집는다.

“하하, 벌써 와 있었네?”

아까 잠깐 헤어졌던 우식이와 철성이가 강의실로 들어온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너, 그거 들었어? 상경대 건물 앞에서 웬 커플이 서로 싸우는데…”

역시 캠퍼스 내에서 일어나는 연애사는 최고의 가십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에도 문과 쪽 건물에서 무슨 사랑 다툼같은 것이 일어났나보다.

“우리 공대 건물에는 왜 그런 게 없는거야?”

민호가 짐짓 모른 체 웃으며 말한다.

최근 공대에 여자들이 많이 입학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남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자들 위주로 구성된 문과 또는 상경대 쪽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런 연애사는 특히 공대남들의 이목을 끌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저런 화제를 듣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되어 교수님이 들어온다.

들고오시는 책이 두껍다. 어차피 강의실 컴퓨터에 자료가 있지만, 옛날 대학 생활을 종이책으로 하셨던 교수님들이라 정말 젊은 교수가 아니면 일반적으로 종이책을 선호하신다. 디지털 시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늘은 정역학 중 마찰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신승태 교수. 미국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올해 조교수로 임용되었다. 교수들이 연구와 강의를 동시에 함에 따라 연구에 특화된 교수, 강의에 특화된 교수로도 분류할 수 있는데 신승태 교수는 강의도 잘하는 편이지만 연구 쪽에 더 강점이 있는 교수다.

“마찰, 고체가 가만히 정지해 있다가 움직이려 할 때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할까요?”

중고등학교 시절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중 물리에 가장 흥미를 보였던 민호로서는 타 강의에 비해 좀 더 관심이 간다.

“.. 하지만 본 수업은 정역학이기 때문에 마찰력을 넘어 움직이는 물체는 여기서 다루지 않을 겁니다. 동역학 수업에서 다룰테니 이 수업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물체를 가정하고 힘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정역학, 동역학, 고체역학(재료역학), 유체역학. 공대에서는 4대역학으로 불리며 마치 무슨 4대천왕처럼 군림하고 있는 전공과목들이다. 이 중에서도 왕중왕은 민호 개인적으로 유체역학이라 생각한다.

가만히 정지해 있는 것도 계산하기 쉽지 않은데, 액체, 기체와 같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질들에 가해지는 힘을 구해야 하니 이건 보통 머리아픈 일이 아니다.

그나마 쉬운 정역학부터 마스터하려 애쓰지만, 그렇다고 다른 역학보다 상대적으로 쉽다는 것이지, 이것이 절대적으로 쉽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정역학 교재, 그것도 앞부분만 곧잘 너덜너덜해진다.

알듯 말듯 모를듯한 강의가 3시간여만에 끝이 나자, 민호가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와… 나 아무래도 전공을 잘못 선택한 것 같아.”

우식이가 민호에게 다가와 말한다.

“나도..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학과 지원할 걸. 그렇다고 재수하고 싶지는 않은데 말야.”

민호도 맞장구치며 자신이 처한 신세를 한탄한다. 겉보기에 뭔가 멋있어보여서 선택한 항공우주학이지만, 실상은 과학도 아니고 오히려 수학에 가까운 듯한 학문에 자신이 잘 알아보지 않고 지원한 것을 탓해야 할 판이다. 낚인 느낌마저 든다.

철성이는 그 와중에도 어느 정도 알아듣고는 있는 것인지 필기한 노트를 책가방에 집어넣으며 조용히 일어선다.

‘이제 와서 다시 공부한다 해도, 군대 다녀오면 또 까먹는 것은 같을테고 그냥 바로 입대할까?’

충동적인 생각이 민호의 머리를 스친다.

‘아냐.. 전공을 살려서 드론 관련해 입대하기로 했잖아, 정신차려!’

잠깐 나약해진 마음에 놀라 스스로를 다그친다.

철성이가 갑자기 제안을 한다.

“내일 주말이고 하니까, 오늘 PC방 어때?”

우식이가 바로 콜을 외친다. 민호 역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는터라 철성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아오~ 스트레스 받아, 이 참에 좀 풀고 주말에 사람답게 살아보자.”

우식이의 사자후와 같은 외침과 함께 셋은 학교 문을 나서 PC방으로 향한다.



– 최종드론병기 제3화에서 계속


2 thoughts on “[현대 판타지 소설] 최종드론병기 – 2 –”

  1. 그때의 스타한판이 생각나네요 옵저버잘띄울꺼 같음 ㅎ

    3편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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